삶의 여유을 찾아/충청도여행

[속리산 여행] 친정어머니와 함께 한 속리산 법주사 나들이

무지개_느티 2010. 3. 17. 00:26

2010.2.15

시댁에서 설명절을 보내고 설날 저녁에 친정으로 향했다.

친정에는 94세 되신 할머니가 계시고 친정부모님이 계셔서 매해 설날 저녁엔 친정으로 향한다.

친정에 도착하면 남동생들과 오빠는 처가에 가고 명절 세시느라 고생하신 부모님이 우리를 맞으신다.

할머니가 그랬듯이 어머니께서도 음력 1월 2일엔 속리산 법주사에 딸린 수정암을 찾으신다.

1년 동안 무탈하고 소망하는 모든 일이 이루어지길 소망하며 기도를 올린다.

청주에서 속리산까지 대중교통을 이용해 부처님께 공양할 것을 머리에 이고 이곳을 해마다 찾으셨던 것이다.

다리가 아파 고생하시는 어머니의 노고를 덜어드릴겸해서 몇 해 전부터는 어머니를 모시고 법주사로 향한다.

이날은 새하얀 눈이 내려 멀리 보이는 속리산이 신비롭게 보였다.

무엇보다도 어머니와 함께 한 나들이라 마음이 뿌듯했다.

 

 법주사 경내

 

 법주사 팔상전

 

 법주사 팔상전(국보 제 55호) 조선시대

 

  신라 진흥왕 14년(553)에 창건되어, 조선 인조 4년(1626)에 벽암선사(碧巖禪師)가 재건하였고, 최근(1968)에 완전 해체 복원공사를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팔상전은 법주사의 오층목조 탑파건축(塔婆建築)으로, 1984년 4월 30일 쌍봉사의 대웅전으로 쓰이고 있던 삼층목조탑이 화재가 발생하여 없어지게됨으로써, 한국 목조탑(木造塔)의 유일한 실예(實例)가 된 중요한 건축물이다.
  1층과 2층은 정면 5칸 측면 5칸, 3·4층은 정면과 측면 3칸, 5층은 정면과 측면 모두 2칸의 정방형으로 되어 있고 지붕은 사모지붕으로 상부에 상륜부(相輪部)가 온전하게 갖추어져 있다. 공포(공包)의 양식(樣式)은 1층부터 4층까지는 기둥 위에만 공포를 짠 주심포식(柱心包式)이나, 5층은 주간(柱間)에도 공포를 짜 올린 다포식(多包式)으로 되어 있음이 주목된다. 내부 중앙에는 찰주(擦柱)의 심초석이 있어 이 위에 심주(心柱)를 세웠고, 이의 네 귀에 우고주(隅高柱)를 세웠다. 1층의 변주(邊柱)와 우고주를 연결한 퇴보 위에는 2층의 변주를 세웠다. 이러한 가구법은 목조탑의 전형이 아닌가 생각된다.

  전체 높이는 기단부에서 상륜(相輪)까지 약 24m로서 현존하는 한국의 탑파 중에 제일 높은 것이다.

 

 

 

 

 멀리 보니는 속리산이 눈 속에 신비롭다.

 

 

 

 법주사 대웅보전(국보 제 915호) 조선시대

 

  속리산 기슭에 있는 법주사는 신라 진흥왕 14년(553)에 처음 지었고, 혜공왕 12년(776)에 다시 지었다. 임진왜란으로 모두 불탄 것을 인조 2년(1624)에 벽암이 다시 지었으며 그 뒤 여러 차례 수리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웅전은 앞면 7칸·옆면 4칸 규모의 2층 건물로, 지붕은 옆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이다. 내부에 모신 삼존불은 벽암이 다시 지을 때 조성한 것으로 가운데에 법신(法身)인 비로자나불, 왼쪽에 보신(報身)인 노사나불, 오른쪽에 화신(化身)인 석가모니불이 있다.

이 건물은 무량사 극락전, 화엄사 각황전과 함께 우리나라 3대불전(佛典) 중 하나이다.

 

20여년 가까이 다니던 수정암이다. 아무도 밟지 않은 눈이 반가워 한컷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며 이곳 수정암에 오면 마음이 아려온다.  평소 존경하던 스님은 몇년 전 세상을 뜨셨고 마음 속에 그리움만 쌓인다.

 

 

 

 수정암에서 법주사로 향하는 길

 

 절에 올 땐 의복을 갖추고 기도를 올려야 한다고 늘 말씀하시는 내 어머니

 

 

 천왕문

 

 

 법주사로 들어오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