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위에 있는 인각사(麟角寺)는
경상북도 군위군 고로면 화북리 화산에 위치하고 있는 사찰로, 은해사의 말사로서 642년(신라 선덕왕 11)에 의상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하며, 절 입구에 깎아지른 듯한 바위가 있는데 기린이 뿔을 바위에 얹었다고 하여 절 이름을 인각사(麟角寺)라 하였다고 한다.
그 뒤 1284년(고려 충렬왕 10)에 일연성사가 중창하고 이곳에서 「삼국유사」를 저술하였다. 삼국유사는 우리 민족의 개국신화인 단군신화를 최초로 기록해 놓았을 뿐 아니라 문화와 사상, 불교관계 등 삼국사기에서 서술하지 아니한 민족의 귀중한 유산을 종합적으로 집대성한 역사서 이상의 가치가 있는 민족의 성서이다.
아래의 것은 고려 충렬왕 15년(1289)에 입적한 보각국사 일연의 사리탑이다. 일연은 『삼국유사』를 저술하는 등 많은 업적을 이룬 승려인데, 노년에 인각사에서 늙으신 어머니를 지극히 봉양하였다고 한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아침에 해가 뜰 때 이 탑에서 광채가 나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일연스님 어머니의 묘를 비추었다고 한다.
탑은 자연석으로 된 바닥돌 위에 8각의 아래받침돌을 놓았는데 윗면이 급한 경사를 이루고 있다. 가운데받침돌 역시 8각으로, 동물을 조각하였으나 뚜렷하지 않다. 윗받침돌은 8각이지만 원형에 가깝고, 단조롭고 소박한 연꽃이 새겨져 있다. 탑몸도 8각으로 정면에는 ‘보각국사정조지탑’이란 탑이름이 있고, 뒷면에는 문모양의 조각이 있으며 남은 6면에는 사천왕입상(四天王立像)과, 연꽃 위에 서 있는 보살상(菩薩像)을 새겼다. 지붕의 두꺼운 추녀 밑은 위로 느리게 들려 있고, 낙수면은 급한 편이며 지붕선 끝부분에 꽃장식이 달려 있다. 지붕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이 큼직하게 올려져 있다.
이 탑은 원래 인각사(麟角寺)에서 동쪽으로 2km지점에 세워졌던 것이나 도굴배의 만행으로 쓰러져 있던 것을 1962년에 이곳으로 옮겨 보물로 지정되게 되었다.
시도유형문화재 제339호로 지정된 인각사석불좌상
탑비는 국사의 제자인 법진에 의하여 세워졌다. 비문은 당시의 문장가인 민지가 왕명을 받들어 지었으며, 글씨는 진나라까지 가서 왕희지의 글씨를 집자(集字)하여 만들었다. 지금은 비의 형체가 많이 훼손되었으나 다행히 비문은 오대산 월정사에 사본이 남아있다.
비문에 의하면 비를 세운 시기가 충렬왕 21년(1295)이므로, 부도탑의 건립 역시 일연이 입적한 해인 1289년에서 1295년 사이의 일로 짐작된다.
자연석으로 짜여진 지대석(地臺石) 위에 팔각하대석(八角下臺石)이 놓여 있는데, 상면은 급한 경사를 이루고 있으며 중대석에는 동물상이 조각되어 있다. 상대석도 팔각이나 원형에 가까워졌고 주위에는 연꽃 팔엽(八葉)이 조각되어 있다. 탑신(塔身)도 팔각인데 정면에는 '보각국사(普覺國師) 정조지탑(靜照之塔)'이란 탑명(塔銘)이 있고, 후면에는 문비(門扉)형이 있으며 남은 6면에는 사천왕입상(四天王立像)과 연판 위의 보살입상(菩薩立像)이 양각되어 있다.
탑비(塔碑)는 점판암(粘板岩)으로 조성되었는데 행간(行間)을 음각으로 구획하고 명문(銘文)을 각자(刻字)하였다.
현재 몹시 파손되어 있으나 이 비문은 강원도(江原道) 평창군(平昌郡) 진부면(珍富面) 오대산(五臺山) 월정사(月精寺)에 사본(寫本)이 있어 알 수 있다. 이에 의하여 고려(高麗) 충렬왕(忠烈王) 21년(1295)에 건립하였음을 알 수 있다.
해체되어 복원을 기다리고 있는 삼층석탑
맨드라미가 아주 실하게 피어 있다.
백일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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