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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여행] 천호산 기슭에 있는 후삼국 통일의 호국사찰 개태사

무지개_느티 2010. 4. 9. 09:14

개태사는 충남 논산시 연산면 천호리의 천호산 서쪽 기숡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 개태사의 창건 설화가 전해지고 있는데

  후백제의 견훤이 신라를 공격함에 태조 왕건이 군사를 내어 신라를 구원하고, 또한 고려 태조19년(936)에 후백제를 쳐서 30여 고을을 얻고 또 같은 때에 발해의 유민이 귀순하였으며 삼국을 통일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태조는 개태사를 창건하고 친히 원문을 손수 지었는데 삼국을 통일하고 고려를 개국 하기까지에는 부처님의 은혜와 산신령이 도와 주신 은덕이 크므로 이에 보답하기 위하여 해당관원에게 명하여 국찰로 창건하고 산 이름을 천호산, 절 이름은 개태사라 하였다.

 

  그 뒤 고려의 국운이 기울어져 가던 1370여년경 왜적이 연산현에 침입하여 개태사에 대한 약탈 행위가 있었고, 그뒤 창왕시대에도 왜구의 침입을 받아 사운이 기울어지게 되었다고 전해온다.(전통사찰관광종합정보 참조) 
 

 

  고려 태조 19년(936년)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한 후 왕명으로 창건한 사찰로 호국사찰로서 고려시대에는 크게 번영하였으나 고려말 왜구의 잦은 침입으로 약탈과 방화가 계속되다 폐사가 되었다. 1930년에 들어와 석불입상을 복원하면서 중건이 시작되어 용화대보궁을 비롯해 정법궁, 우주정, 요사 및 5층석탑을 갖춘 현재의 모습이 이루어졌다.

 

 

  절 안에는 보물 제219호로 지정된 석불입상을 비롯하여 철확(시도민속자료 제1호) 및 5층석탑(문화재자료 제274호) 등의 문화재가 있다. 석불입상은 고려초 창건 당시의 것으로 추정되는 거상(巨像)으로 고려시대 석조불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철확은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며, 그 크기로 보아 고려시대에 개태사가 상당히 번성했던 상황을 보여준다.
 

 

 

 

보물 제219호 개태사지석불입상

고려 태조가 후백제와 최후의 결전을 벌인 후 이를 기념하기 위해서 태조 19년(936) 격전지에다 세운 사찰이다. 이 삼존석불은 그 당시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삼존불 가운데 본존불(本尊佛)은 얼굴에 비해서 눈과 귀가 다소 크고 길게 표현되었으며, 거의 원통형에 가까운 체구는 아래로 내려갈수록 넓어져 다소 부자연스럽다. 탄력이 감소된 신체굴곡, 크게 표현된 손과 발, 사각형으로 깎아 발가락만을 선각(線刻)으로 표현한 양 다리 등 전체적으로 둔중한 느낌을 준다.

 

  좌우의 보살상(菩薩像) 역시 본존과 동일한 수법이나 어깨와 가슴이 좀더 부드럽고 팔찌와 상의(裳衣)에는 비교적 섬세한 장식무늬가 표현되어 있다.

 

  이처럼 다소 둔중한 느낌을 주는 지방양식의 특징을 보여주는 불상이지만 제작 시기가 거의 확실하고, 고려의 후삼국통일의 의지가 담겨 있으며, 고려(高麗) 전기(前期) 지방 석불상으로서는 수작(秀作)에 속하고 있어서 이 삼존불상의 가치는 높이 평가된다.

 

 

 

 

문화재자료 제274호 개태사오층석탑

 

  절 마당에 자리하고 있는 이 탑은 옛 터에 남아 있었는데, 절을 새로 지을 때 이곳으로 자리를 옮긴 것으로, 옮길 당시 아래 부분이 일부 없어져 완전한 제 모습을 갖추고 있지는 않다. 즉, 높직한 바닥돌 위로 기단(基壇)이 없어진 채, 5층의 탑신(塔身)만이 차례로 쌓여 있다. 탑신부의 각 몸돌에는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새겼고, 몸돌을 덮고 있는 지붕돌에는 밑면에 4단씩의 받침을 두었다. 꼭대기에는 네모난 받침돌 위로 꽃봉오리 모양의 머리장식이 놓여 있다.

 

  비록 일부가 없어져 본래의 모습을 볼 수 없는 것이 아쉽기는 하나, 조각 기법이 소박하고 단아한 기품이 느껴지는 탑으로,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추측된다.

 

 

 

 

 

시도민속자료 제1호 개태사철확

 

  이 철확은 개태사(開泰寺)가 창건되면서 주방(廚房)에서 밥솥으로 사용되던 것인데, 동사(同寺)가 폐찰(廢刹)되자 버려진 것을 뒤에 큰 가뭄에 이 솥을 다른 곳에 옮기면 비가 온다는 전설이 있어 연산읍 부근에 옮겨온 것인데 현 위치에 있게 된 것은 일제시(日帝時) 서울서 개최된 박람회에 출품된 후 지금의 위치에서 보존되어 오고 있는 것이다. 형태는 뒤집어 놓은 벙거지형에 가장자리가 없는 모양이며 직경이 약 2m에 둘레가 약 6.28m이며 높이 97cm이다. 

 

 

 

 

 

 

논산 여행의 마무리가 가까워 지고 있다.

이제 이곳을 보고 나면 개태사지를 찾아보고 화악리의 천연기념물 제265호인 연산화악리의 오계를 보고 그곳에서 저녁으로 오골계 백숙을 먹으면 기나긴 하루 여정이 마무리된다. 청주 친정에 들러 오늘 하루 묵고 부모님과 할머니를 뵙고 가야겠다.

남편이 내 마음을 알아 친정에 들러준다니 그저 고마울뿐이다.

결혼생활 18년이 되니 이제 말하지 않아도 원하는게 뭔지 안다.

눈빛만 보아도,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게 있을 때 마냥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