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여유을 찾아/서울여행

홍지문에 얽힌 추억 여행

무지개_느티 2010. 9. 14. 23:46

오랜만에 서울나들이다.

대학시절 나에게 홍지문은 외로움을 달래주던 곳이기도 했다.

청주에서 올라와 아는 친구 하나없는 서울 생활.

낯설고 물설은 곳에서의 생활은 나에게 향수병을 앓게 했고

평소에 말이 별로 없고 사람을 잘 사귀지 못하는 내성적인 성격인 나로서는 서울 생활이 무척이나 외롭고 힘든 생활이었다.

다정한 단짝 친구가 있어 대학 1년은 잘 보냈는데 어느날 그 친구는 재수를 하겠다며 휴학을 했다.

대학교 2학년 때 난 홍지문 근처에서 자취를 했다.

봄날 홍지문을 지나노나면 길가에 노란 개나리가 나를 반겨 주었고, 홍지문 옆으로 흐르는 냇가에선 오리떼가 뒤뚱대며 걷곤 했다.

단짝 친구는 배꼽잡고 웃는데 난 그 친구가 왜 웃는지를 물었다.

오리의 걸음걸이가 우습대며 깔깔대던 그 친구 생각이 난다. 감수성 풍부했던 소녀같던 친구.

25년만에 이곳을 찾으니 자취하던 집은 흔적도 없다.

다만 홍지문과 흐르는 냇물만은 여전하다.

자연은 언제나 그대로인데 난 어느새 중년의 아줌마가 되어 있다.

아, 무심한 세월이여!

 

 홍지문을 지나면 길가에 노란 개나리가 피어 고향생각을 더욱 간절하게 하곤 했다.

청주에서 고등학교 다닐 때 청주고등학교 옆을 지나다녔는데 노란 개나리 꽃그늘이 아주 운치있었다.

길 가에 휘휘 늘어진 가지마다 조롱조롱 맺혀있던 개나리 꽃잎.

그 꽃그늘 아래로 걸어가다 보면 마음이 설레곤 했다.

 

 

홍지문은 탕춘대성의 성문으로, 조선 숙종 41년(1715)에 서울도성과 북한산성을 보완하기 위해 세웠다. 지금 있는 건물은 1921년 홍수로 오간대 수문과 같이 허물어진 것을 1977년에 복원한 것이다. 한북문이라고도 부른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앞면에서 볼 때 사다리꼴을 한 우진각지붕이다.

탕춘대성은 숙종 44년(1718) 짓기 시작하여 이듬해 완성한 것으로, 명칭은 세검정 부근에 있던 탕춘대(蕩春臺)에서 따왔다고 한다.

 

 예전엔 이 냇가에 물오리가 꽤 많았었는데........

 

 홍지문(시도유형문화재 제 33호), 조선시대

 

 왼쪽으로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면 자취하던 집이 있었다. 모두다 연탄을 때던 시절.

이웃집 아저씨는 지게에 연탄을 지고 힘겹게 계단을 오르곤 하셨었다. 자취방은 바람이 숭숭 들어오고 방 2개에 85년 당시 300만원을 주고 자취를 했던 생각이 또렷하다. 허술한  문고리 때문에 아버지께서는 어린 딸을 자취시키는게 마음에 걸려 몇번이고 조심하라 당부하시고 문고리를 달아주셨던 기억이 생생하다.

자취방을 구하던 날 작은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서 몹씨 추운 날 자취방을 구하려 헤매고 다녔던 생각이 난다. 그 싸늘했던 바람과 혼자 남겨진다는 외로움이 시리게 다가왔던 그 때가 생각난다.

부모님 곁을 떠나 서울에서 유학하던 그 시절.

참, 많이도 외로웠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