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애행] 대몽항쟁의 역사적 중심지 진도 남도진성
진도여행을 떠나
금골산의 오층석탑, 용장성, 바다가 갈라지는 신비의 바닷길, 배중손 사당을 거쳐 진도의 남쪽에서 만난 진도 남도진성
진도 남도진성은
1964년 6월 10일 사적 제127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는 성으로
고려 원종(재위 1259∼1274)
삼별초가 진도에서 몽골과 항쟁을 벌일 때 해안지방을 방어하기 위해 쌓은 성으로, 삼별초가 제주도로 옮겨갈 때 이곳에서 출발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백제 때 진도에는 3개의 마을이 있었고 그 중 한 마을의 중심지가 이곳으로 여겨지는데, 통일신라를 거쳐 고려시대까지 이어져 오는 것을 보면, 삼국시대에 이미 성이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13세기부터는 왜구가 나타나서 노략질을 계속해 오자, 고려 충정왕 2년(1350)에 진도의 관청과 백성들이 내륙지방으로 피해서 살다가 세종대왕 초에 돌아오기도 했다. 결국 세종 20년(1438) 해안지방에 주로 설치되던 군사조직인 만호부가 이 지역에 생기게 되고 왜구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성을 쌓았는데, 지금 남아있는 성은 그 이후에 쌓은 것으로 여겨진다.
동·서·남문이 있던 자리가 잘 남아 있으며, 둘레가 400여m 정도이지만, 해안지방을 보호하기 위한 중요한 위치임을 보여주고 있는 유적으로 가치가 매우 크다.
성 안에 사람들이 마을을 이루고 거주하고 있다.
집 모양만 달라졌지 그 옛날에도 여기에 많은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었을 것이다.
돌덩이 하나하나 정성껏 쌓아 놓은 진도 남도진성
문화재자료 제2156호로 지정된 단운교
아치형으로 쌓아 놓은 다리 모양이 아름답다.
성문을 지나 성 안으로 들어갈 때 금방이라도 성문을 지키는 군사가 나올 것만 같다.
사극을 너무 많이 보아서일까?
저 멀리 황금들녘엔 벼가 누릇누릇 익어간다.
돌로 쌓여진 성을 천천히 걸으며 옛날을 떠올려 본다.
아직 보수가 다 되지 않았는지 아니면 위험해서인지 출입통제 안내판이 걸려있다.
한 가족인 것 같은데 열심히 설명을 하고 있다. 우리 문화재를 사랑하는 아름다운 모습이다.
잡풀이 우거진 성터엔 세월의 무상함이 묻어난다.
한하로이 성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파란 하늘 아래 아름답게 쌓여진 성을 감상해 본다.
문화재자료 제2156호로 지정된 쌍운교
무너지지도 않게 아주 아름답게 잘 놓여진 쌍운교이다.
어린 진돗개 가족이 낮잠을 즐기고 있다. 지나가는 이가 어미 진돗개를 보고 진돗개는 주인만 따르지 다른 사람들은 잘 따르지 않아 길들이기 어렵다는 말을 하고 지나간다. 그 만큼 충성심이 남다르다 하겠다.
어린 것들은 그 무엇이건 귀엽고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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