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5일
아버지와 여동생, 나와 남편
이렇게 넷이서 2011년 5월 5일 세상을 떠나신 할머니 기일을 앞두고
할머니, 할아버지 산소를 찾았다.
오랫만에 고향을 찾아 성묘를 하고 나니
어느새 어린 시절의 추억 속에 묻힌다.
아버지, 어머니께서는 동생들과 함께 아버지 직장 때문에 시골에서 생활하셨고
오빠와 나, 그리고 여동생은 청주에 계신 할머니와 생활하게 되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1주일 정도 지난 후에 엄마와 함께 할머니가 계신 청주에 가던 날
엄마 손 잡고 아버지 혼자 직장에 다니시라 하고 나와 함께 여기서 살자고 떼를 썼던 나는
어느새 지천명의 나이를 넘긴 어른이 되었건만
아직도 어머니와 헤어져 살았던 그때의 아픔이 자리해 외로움으로 남아
때론 내 마음 속에 자라지 않은 어린 아이로 자리하고 있다.
할머니와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함께 살았다.
정이 많으셨던 우리 할머니
늘 손주들이 어찌 될세라 걱정 많으셨던 할머니
만원 버스에 시달릴 손녀를 위해 새벽밥 해주시며 무거운 가방 들어다 주시고
버스에 탈 때까지 지켜봐 주시던 할머니
주말에 엄마, 아빠 만나러 시골에 갈 때면
혼자 계신 할머니를 두고 가는 것이 안타까워 자꾸 뒤돌아 보았던 나
언제나 마음 한 켠이 아려왔다.
고등학교 3년 지나고 서울로 대학 진학을 해 할머니와 헤어져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로 향하던 날
시집 보내는 것보다 더 서운하다 하시던 할머니께서는
이제 계시지 않는다.
가끔 꿈 속에서
말없이 날 지켜봐 주시는 우리 할머니
오늘은 할머니 산소에서
그리운 할머니를 만난다.
이곳은 할머니, 할아버지뿐만 아니라 나의 선대 조상님들께서 잠들어 계신 곳이다.
아버지의 11대(시조로부터 21세 숙겸 할아버지) 조상님들까지 모셔져 있다.
나의 본관은 동래정씨 평리공파 33대 손이다.
시조로부터 15세, 아버지로부터 위로 17대 이한 할아버님의 호가 평리공이라 평리공파라 한다.
어려서 늘 듣던 소리가 6정승 12판서를 낸 명문가문이라 가문을 생각해야 된다고 늘 말씀하셨었다.
그땐 무척이나 고루하게 여겨졌었다.
아버지께서는 일일이 누구의 묘역인지 설명해 주셨고 아버지의 가묘도 알려주셨다.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이들은 끝내는 다 죽지만
나의 부모님만은 아주 먼 훗날 이별하고 픈 마음이다.
오늘 조상님들의 음덕을 기리고 감사한 마음을 담아 예를 올린다.
정경당
이곳에서 종친회도 열리고 시제도 올리고
정겨운 분들이 다 모여 친척 간의 정도 쌓고 조상님들의 음덕을 기리고 고향의 향수를 전해 주신다.
조상님들의 음덕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묘비는 나의 아버지께서 2011년 4월에 손수 쓰셨다 .
다음은 나의 작은아버지께서 쓰신 '정경당 사람들' 을 소개하려 한다.
<정경당 사람들>
-정 화 영-
안봉산 아래
고즈넉이 자리 잡은 곳에
정경당이라는 곳이 있다.
그 곳에는
얼굴도 말소리도 걸음걸이 조차도
서로 닮은 사람들이 모여 산다.
그들은 태어나면서부터
하늘을 우러러 숭상하고
땅을 굽어 존중하며
사람을 품어 다독이며 산다.
또 그들은
아버지와 그의 아버지가
하던 방식 대로
그릇 되거나 헛됨이 없이
올 곧게 살아 가야만 한다고
서로를 가르치며 오손도손 산다.
그래서 나는 그곳에 가면
언제나 그들을 닮으려 노력하고
그들과 함께 행복에 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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