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다스리는 글/좋은 글

감자꽃 속에 깃든 나의 할머니

무지개_느티 2011. 6. 24. 03:24

2011년 5월 5일

나의 할머니는 95세의 삶을 마감하셨다.

어느 날 침대에서 굴러 떨어져 골반뼈가 다 으스러져 대수술을 받으시곤 그답 일어나지 못하시고

5년을 병원에서 투병생활을 하시다가 5월 5일 저녁 한 많은 삶을 마감하셨다.

 

오빠와 나, 여동생은 시골 초등학교에서 근무하시던 아버지와 떨어져 청주시내로 전학을 왔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고등학교까지 할머니와 생활을 했다.

꼭두새벽에 일어나셔서 새벽밥을 해 먹이고 무거운 가방을 들어다 주시며

만원버스에 올라타는 손녀딸의 등을 밀어주시곤 하셨다.

 

깊은 밤 잠 못 들 때면 옛날 이야기며 살아오신 이야기를 들려주시곤 하셨다.

그러면서 사무치는 한에 침이 말라 거듭 목을 가다듬으시며 "나 살은 얘길 어디다 다 하겠니?"하셨다.

그땐 할머니의 그 말씀을 다 이해하진 못했지만 지금은 뼈져리게 느낀다.

 

남들은 천수를 다 누리셔서 호상이라 하지만 이 세상을 살다 가는 삶이 나이가 많고 적고 간에 호상은 없는 듯하다.

한 많은 세상살이라지만 삶을 마감하는데 어찌 서러움과 슬픔이 없겠는가?

 

우리 할머니는

언제나 자식들이건 주변 사람들이건 간에 민폐끼치는 것을 지나치리만큼 너무도 싫어하셨다.

자식들에게도 손주들에게도 늘

 "난, 괜찮다."

하시던 할머니.

 

언제나 근검절약이 몸에 밴 생활을 하셨던 내 할머니.

새옷 사다드리면 아끼고 아끼면서 "헌 게 있어야 새 게 있지." 하셨다.

당신 입에 들어가는 것조차도 아끼고 아껴 늘 손주들에게 먹이고

언제나 그렇게 자식들을 그리고 손주들을 먼저 배려하셨던 내 할머니는

그렇게 우리 곁을 영원히 떠나셨다.

 

2011.6.22일 49재를 올리며 영원히 아름답고 평화로운 세상에 머무시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사랑하는 나의 할머니를 보내드렸다.

궂은 비는 내리고 한 마리 검은 나비 법당 안으로 들어와 할머니의 영혼인 듯 나풀나풀 날며 자식들 곁을 지켰다.

2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기도를 올리고 마지막으로 회심곡을 스님께서 읇으시며 49재를 끝냈다.

회심곡을 들으며 생전에 할머니의 삶과 한을 생각하며 참 많이도 울었다.

이제는 고통없고 평화로운 세상에서 영면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인제팸투어에 참여해 길 가에 예쁘게 핀 감자꽃을 찍어 보았다.

 

 

 

 

안성 칠장사 가다가 길가에 핀 감자꽃이 하도 예뻐서 담아 보았다.

 

감자밭

 

정화영 

 

 

                 씨감자

 

              서너개 들려주며

 

             잘가거라

             손 흔들어주던 어머니

 

             씨감자는

             어미 감자되어

 

             따비밭

             이랑마다 가득한데

 

              어머니

              숨결 아니머물고

 

              흰 꽃

             자주 꽃만

 

              애처로이

              피었다 지는구나.

 

 

출전: <비오는 날의 소고>, 정화영, 도서출판 영하

월간 순수문학 199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