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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시 가흥동에 불상관련 보물이 있네

무지개_느티 2009. 11. 26. 01:09

영주시 가흥1동의 하천변 야산에는

영주가흥동마애삼존불상및여래좌상(보물 제221호),영주가흥리암각화(시도유형문화재 제248호)와, 경상북도립영주공공조서관에 영주리석불입상(보물 제60호)이 있다.

 

강가 바위면에 본존불과 그 좌우에 서  있는 보살상을 각각 새긴 마애삼존불(磨崖三尊佛)과 그 오른쪽에 마애여래좌상이 있다. 

 

  마애삼존불 중 본존불은 상당히 큼직한 체구로 장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큼직한 코, 다문 입, 둥글고 살찐 얼굴에서 불상의 강한 의지가 느껴진다. 가슴은 당당하고 어깨의 굴곡과 손모양이 발랄해 보인다. 양 어깨를 감싸고 흘러내린 옷은 장중한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자연 바위를 그대로 이용하여 연꽃무늬와 불꽃무늬를 새긴 광배와 높게 돋을새김한 연꽃무늬의 대좌(臺座) 등은 장중한 불상의 특징과 잘 조화되어 더욱 듬직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왼쪽 보살상은 둥글고 풍만한 얼굴이다. 가슴이 넓으며 왼팔은 어깨 위로 걸치고 오른팔은 배에 대었는데 강한 남성적 기질을 느낄 수 있다. 오른쪽 보살상은 왼쪽 보살상과 거의 같은 수법이다. 머리에는 보관(寶冠)을 쓰고 손에는 보병(寶甁)을 들고 있으며, 두 손을 모으고 있는 점 등이 다를 뿐이다. 이 마애불은 통일신라시대의 조각 흐름을 잘 보여주는 사실주의적 불상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마애삼조불의 오른쪽에 불상이 있는데

자연 바위면에 새긴 마애여래좌상으로 지난 2003년 6월 28일 집중호우로 보물 제221호인 '영주가흥동마애삼존불상'의 좌측 앞 부분의 암벽 일부가 무너지면서 새롭게 발견되었다. 민머리위에 살상투가 큼직하고 귀는 어깨까지 늘어져 있으며, 목에는 삼도가 뚜렷하다. 두눈은 파이고, 코와 입부분은 훼손이 심하나 양쪽볼은 풍만하여 전반적으로 생동감을 느끼게 한다. 법의는 통견으로 옷주름이 왼손에서 무릎으로 묵직하게 흐르지만 세부적인 표현은 보이지 않는다. 광배는 보주형이며 2중으로 조각하였는데 내연부는 머리를 중심으로 연판을 돌렸다.

 

전체적으로 바위면을 안쪽으로 파들어가면서 조각하여 감실형을 따른점과 앙련의 연화좌, 광배의 조각기법 등은 모두 고식이다. 불상의 형태로 보아 옆의 마애삼존불상의 본존불을 모범으로 삼아 조각한 것으로 보이며, 전체적으로 조형미가 뛰어난 통일신라중기의 우수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암각화란 선사시대 사람들이 바위나 동굴의 벽면돌에 기호나 물건, 동물 등의 그림을 새겨놓은 것을 말하며, 풍요와 생산을 기원하는 주술행위의 결과물로 보고 있다.

가흥리 암각화는 가흥리 마애삼존불상이 있는 바위의 10m 아래에 새겨 놓았는데, 높이 1∼1.5m, 너비 4.5m로, 청동기 시대에 새긴 것이다. 청동 도구로 쪼아서 새기는 방법을 사용하여 3∼5개의 선을 옆으로 연결하였는데, 그 의미는 아직 알 수 없다. 이러한 수법은 고령 양전동, 울산 천전리 바위그림과 비슷하다. 

 

 

 

광배와 상이 하나의 돌에 조각된 거의 완전한 형태의 보살상으로, 원래는 시내의 절터에 있던 것을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고 한다.

굵은 목에 넓고 둥근 어깨는 힘차고 당당한 모습이며, 이러한 경향은 굵은 팔, 다리 및 투박한 손발 등 신체의 각 부분에까지 공통적으로 드러나 전체적으로 박력있는 남성의 체구를 연상시킨다. 넓적한 사각형의 얼굴, 특히 두꺼운 입술의 표현은 영주 가흥리 마애삼존불상(보물 제221호), 영주 석교리 석불상(보물 제116호) 등과 유사한 것으로 지역적인 공통성으로 이해할 수 있다.

보살이 걸치고 있는 옷의 표현 중 특징적인 것은 왼쪽 겨드랑이에 표현된 매듭이다. 이 매듭에서 내려오는 옷자락은 지그재그형을 그리며 팔 위에 걸쳐있다. 이런 표현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금동약사여래입상(보물 제328호)에서 볼 수 있을 뿐 우리나라에서는 흔하지 않은 예이다.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빛을 형상화한 광배(光背)는 선이 날카로우며, 머리광배와 몸광배를 구분해 주는 곡선이 분명하게 처리되어 있다. 이런 분명한 곡선처리는 이 작품이 감산사 석조아미타여래입상(국보 제82호)보다 먼저 만들어진 것임을 추측할 수 있게 해준다.

이 보살상은 건장한 체구와 강한 힘을 내재한 듯한 박력있는 작품으로, 표현이 세련되거나 화려한 느낌은 없지만 형식적인 모습은 아니다. 이러한 신체 특징과 광배의 형태 등으로 볼 때 통일신라 후기의 작품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