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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여행]역사의 아픔 딛고 당당히 선 부여정림사지5층석탑

무지개_느티 2010. 6. 29. 20:48

2010.5.9

부여의 대표적 문화재인 정림사지 5층 석탑을 찾는다.

정림사지5층석탑은 문화재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탑을 보면 '아, 멋있다!'라고 생각하리만큼 아주 멋지다.

국보급 문화재를 보고 다니노라면 역시 국보는 다르다는 생각을 하곤한다.

이번 부여여행을 하면서 정림사지5층석탑에 얽힌 이야기를 들으며 탑을 감상하니 감회가 더욱 새롭다.

 

 국보 제9호 부여정림사지5층석탑

돌로 만들었지만 목탑의 양식을 취하고 있다. 살짝 들려진 지붕돌이 한옥의 추녀를 연상케 한다.' 선의 미'가 돋보인다.

 

 넓은 터 위에 아름다운 석탑이 조화를 이루어 보는 이의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세월은 흘러 모든 아픔을 간직하고 있건만 석탑은 말이 없다.

 

 갖가지 모습으로 탑의 아름다움을 담아내느라 여념이 없다.

 

 연못 위엔 어느새 수련이 수줍게 미소짓는다.

 

 뽀얀 속살을 드러내며 반갑게 인사하는 수련

 

 나당연합군이 백제를 함락시키고 소정방이 승전의 기쁨을 이 탑 위에 새겼다고 한다.

나라가 망하고 온 나라가 불바다가 되었을 때 이 탑도 불 속에서 아픔을 인내하고 오늘날까지 이 자리에 꿋꿋하고 당당하게 서 있다. 그때 그을린 자국을

지우려 애써도 흔적은 지워지지 않는다고 한다. 아픔을 고이 간직한 채 당당히 서 있는 정림사지오층석탑이 영원하기를.......

 

 까맣게 그을린 자국이 보이시나요? 그 아픈 멸망의 한도 보이시나요?

 

 일제시대 도굴꾼이 탑을 해체하다가 돌이 떨어지면서 깨져 나간 부분

이 또한 아픈 역사지요.

 

 여기저기 아픈 상처 투성이네요.

 

 자, 그래도 이렇게 당당하고 굿건하게 멋진 자태를 뽐내고 있답니다.

 

부여 정림사터에 세워져 있는 석탑으로, 좁고 낮은 1단의 기단(基壇)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모습이다. 신라와의 연합군으로 백제를 멸망시킨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백제를 정벌한 기념탑’이라는 뜻의 글귀를 이 탑에 남겨놓아, 한때는 ‘평제탑’이라고 잘못 불리어지는 수모를 겪기도 하였다.

기단은 각 면의 가운데와 모서리에 기둥돌을 끼워 놓았고, 탑신부의 각 층 몸돌에는 모서리마다 기둥을 세워놓았는데, 위아래가 좁고 가운데를 볼록하게 표현하는 목조건물의 배흘림기법을 이용하였다. 얇고 넓은 지붕돌은 처마의 네 귀퉁이에서 부드럽게 들려져 단아한 자태를 보여준다.

좁고 얕은 1단의 기단과 배흘림기법의 기둥표현, 얇고 넓은 지붕돌의 형태 등은 목조건물의 형식을 충실히 이행하면서도 단순한 모방이 아닌 세련되고 창의적인 조형을 보여주며, 전체의 형태가 매우 장중하고 아름답다. 익산미륵사지석탑(국보 제11호)과 함께 2기만 남아있는 백제시대의 석탑이라는 점에서도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며, 세련되고 정제된 조형미를 통해 격조높은 기품을 풍기고 있는 아름다운 작품이다.

 

 아주 아름다운 탑이지요?

 

 이 전각 안에는 부여정림사지 석불좌상이 있답니다.

 

 

 충청남도 부여의 정림사지에 남아 있는 석조불상으로 정림사지 5층석탑(국보 제9호)와 남북으로 마주보고 있다. 정림사는 6세기 중엽에 처음 창건되어 백제 멸망 때까지 번창하였던 사찰로 고려시대에 다시 번창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석불상은 고려 때의 번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지금의 머리와 보관은 제작 당시의 것이 아니라, 후대에 다시 만들어 얹은 것으로 보인다. 신체는 극심한 파괴와 마멸로 형체만 겨우 남아 있어 세부적인 양식과 수법을 알아보기 어렵지만, 어깨가 밋밋하게 내려와 왜소한 몸집을 보여준다. 좁아진 어깨와 가슴으로 올라간 왼손의 표현으로 보아 왼손 검지 손가락을 오른손으로 감싸쥔 비로자나불을 형상화한 것으로 추정된다.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臺座)는 상대·중대·하대로 이루어진 8각으로 불상보다 공들여 만든 흔적이 역력하다. 상대는 연꽃이 활작 핀 모양이며, 중대의 8각 받침돌은 각 면에 큼직한 눈모양을 새겼다. 하대에는 연꽃이 엎어진 모양과 안상을 3중으로 중첩되게 표현했다.

현재 불상이 자리잡고 있는 위치가 백제시대 정림사지의 강당 자리로 이곳에서 발견된 명문기와를 통해 이 작품은 고려시대에 절을 고쳐 지을때 세운 본존불로 추정된다.

 뒷모습을 보니 맷돌로 사용하였던 돌에 부처님의 상호를 새겼다고 하네요. 어처구니가 없다는 말 들어보셨나요? 이 석불좌상의 머리 뒷 부분에는 어처구니가 없답니다. 시멘트를 발라 놓은 부분을 잘 눈여겨 보세요. 어처구니가 없으면 맷돌을 돌릴 수가 없겠지요?

 

 

 좌대에 안상이 선명하네요.

 

 

 

종 목 국보  제9호
명 칭 부여정림사지오층석탑(扶餘定林寺址五層石塔)
분 류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불교/ 탑
수량/면적 1기
지정(등록)일 1962.12.20
소 재 지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254
시 대 백제
소유자(소유단체) 국유
관리자(관리단체) 부여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