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7월 26일
여행을 떠나면 새벽부터 서둘러 떠나는데 이날은 늦으막하게 집에서 나와
화성일대의 문화재와 천연기념물 470호인 화성전곡리물푸레나무를 찾아보기로 했다.
햇살은 따가웠으나 여행을 떠나는 마음은 언제나 설레임과 기대감으로 가득하다.
경기도 일대는 집에서 그리 멀지 않기 때문에 여행하기에 부담이 없다.
정용채가옥은 아담한 기와집으로 정겨운 가옥이다.
정용채가옥이 큰집이고 정용래가옥이 작은집이라고 그 댁의 후손이 말해주었다.
정용채가옥 안채
장독대 앞 봉선화가 어린 시절에 봉숭아 꽃물들이던 그때를 떠올리게 한다.
뒷채에서 멋지게 맷돌과 요강을 찍기 위해 열중인 사람이 있군요. 누구일까요?
담장도 멋스럽죠?
원거리에서 정용채가옥의 모습을 담았습니다.
아래에 보이는 사진이 정용래가옥으로 보수공사 중이군요.
정다운 초가집을 찍지 못해 아쉬웠습니다.
종 목 : 중요민속자료 제124호
명 칭 : 화성정용채가옥(華城鄭用采家屋)
설 명 :
나즈막한 동산이 둘러있는 명당 터에 남북으로 길게 자리잡고 있는 큰집이다. 솟을대문에 적힌 기록에는 고종 24년(1887)에 문을 세웠다고 적혀 있으나, 안채와 사랑채는 이 문보다 약 50년 전에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대문은 정면으로 내지않고 북쪽측면으로 내어 언뜻보면 집이 커보이지 않지만 실제로는 50칸이 넘는 큰 규모이다.
대문을 들어서면 바로 사랑마당이며, 마당의 왼쪽으로 길게 줄행랑채가 뻗어있고 오른쪽으로 사랑채가 자리한다. 사랑채 맞은편의 마당끝에는 안채로 통하는 중대문이 있다. 중대문을 들어서면 보이는 ㄷ자형의 안채는 앞이 개방된 가운데 대청을 중심으로 왼쪽에 부엌·안방·찻방(과방)이 있고, 오른쪽에 부엌·건넌방·마루를 배치하였다. 특이한 것은 사랑채의 안사랑방 뒤에 있는 골방이 뒷마루를 통하여 은밀하게 안채의 대청으로 연결된다는 점이다. 이것은 사대부 집에서 통상 쓰는 수법이다.
길다란 행랑채는 안채와 사랑채의 앞을 가로막아 안마당과 사랑마당을 형성하고 있다. 대문채는 여기에 연결이 되어 있다. 안사람들의 아늑한 생활공간이었던 뒷뜰은 우물과 장독대를 두어 안살림의 옥외공간으로 활용하였다. 주위에 심은 감나무와 소나무는 뒷산으로 이어져 자연에 파묻힌 아름다운 공간구성을 만들고 있다.
전체적으로 평면형태가 月자형을 나타내고 있으며 전형적인 양반가옥의 모습을 보이는 주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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