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교란 공자를 비롯한 여러 성현께 제사지내고, 지방 백성들의 교육과 교화를 담당했던 국립교육기관을 가리킨다.
전주향교는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고려시대에 처음 지었다고 전하며, 원래 지금의 경기전이 있던 자리에 있었지만 조선 태종 10년(1410) 화산동으로 옮겼다고 한다. 그 뒤 선조 36년(1603)에 순찰사 장만과 유림들이 힘을 합쳐 현 위치로 옮겼으며, 지금 남아있는 건물들은 이때에 세운 것으로 추정한다.
갑오개혁(1894) 이후로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 2차례에 걸쳐 제사만 지내고 있다.
조선조때 관학의 성격을 띠고 있을 당시, 이 향교는 도호부(都護府)의 관아가 있던 관계로 학생수가 액내생(額內生) 90명, 액외생(額外生) 90명으로 총 180명에 정7품의 훈도 1명이 배속되어 학생들에게 사서 오경 등을 가르쳤다.
이곳에는 특히 계성사가 있어서, 여기에 5성(五聖)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이 계성사는 영조 17년(1741년)에 판관 송달보(宋達輔)가 창건하고, 정랑 이기경(李基敬)이 상량문을 썼다.
전주향교의 현존 건물의 배치형태를 보면 대성전을 중심으로 좌우에 동·서무(東·西무)가 있고, 정면에 일월문(日月門) 그 앞에 만화루(萬化樓)가 있으며, 대성전 뒷담을 사이로 명륜당(明倫堂)이 있고, 서쪽으로 장서각(藏書閣), 계성사(啓聖祠), 양사재(養士齋)와 사마재(司馬齋) 그리고 주위에 교직사(校直舍) 등 여러 건물이 있다.
이곳 배향위패는 서울의 성균관과 같이 대성전에는 공자를 주벽(主壁)으로 사성(四聖)과 십철(十哲), 송대(宋代) 육현(六賢)을 배향하고 있으며, 동서 양무에는 공자의 제자를 비롯한 중국의 유학자 7인과 우리나라의 18현 등 총 25인을 배향하고 있다.
대성전은 선조 때 지은 건물로 순종 융희 1년(1907)에 당시 군수 이중익이 수리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성전에는 서울 성균관과 같이 공자를 중심으로 4성인과 10철학자, 송나라의 6현인을 모시고 있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다. 앞면 3칸 모두 널문을 달았으며 기둥은 원기둥을 사용하였다.
시도 유형문화재 제 7호(전주시)
오래 된 은행나무가 세월의 깊이를 말해주는 듯 하다.
명륜당
잘 생긴 은행나무가 온갖 풍상을 견디고 당당하게 서 있다.
오래되어 여기저기 시술한 자국이 있지만 그래도 굳건하게 서 있다.
저 멀리 홍살문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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