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여유을 찾아/전라도여행

[전주여행] 태조 이성계의 초상화를 모신 경기전

무지개_느티 2010. 11. 10. 21:33

경기전

전주이씨

조선의 뿌리

전주

그 한가운데 경기전이 있으니 태조 이성계의 초상화를 모신 곳이다.

예전에 한번 들렸으나 그때는 시간이 너무 늦어 문이 닫혀 경기전 밖을 보고 돌아간 적이 있다.

오늘도 그리 넉넉한 시간은 없으나 지나는 길에 잠시 짬을 내어 경기전 정전 및 어진을 보게 되었다.

가을비가 보슬보슬 내리는 가운데 둘러보는 경기전 제법 운치가 있다. 

 

보물 제1578호 경기전 정전

 

태종은 1410년 전주·경주·평양에 태조의 모습을 그린 초상화를 모시고 어용전이라 하였다. 그 후 태종 12년(1412)에 태조 진전이라 부르다가 세종 24년(1442)에 와서 전주는 경기전, 경주는 집경전, 평양은 영흥전으로 달리 이름을 지었다. 경기전은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광해군 6년(1614)에 다시 고쳐 지었다.

건물의 구성은 본전·헌·익랑 들로 이루어져 있고 이를 내삼문과 외삼문으로 둘렀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초상화로

가로 150㎝, 세로 218㎝이다. 태조의 초상화는 한 나라의 시조로서 국초부터 여러 곳에 특별하게 보관되어 총 26점이 있었으나, 현재 전주 경기전에 있는 태조 초상화 1점만이 남아있다.

보물 제931호로 지정되어 있다.

 

 

전주한옥마을을 둘러보고 다음 장소인 전주목판서화체험관으로 가는 길

그 길에 경기전이 있다.

조선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모신 경기전

그 앞의 길가에는 각종 꽃들이 손님들을 반기듯 비오는 거리를 환하게 밝혀준다.

  

 

촉촉히 젖은 길

 

경기전의 입구 모습

비가 오는 가운데도 관광객들의 분주히 오가고 있다.

 

하마비

이곳은 조선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모신 곳이기에 지나는 사람은 말에서 내리고 아무나 출입하지 말라는 뜻으로 '至此皆下馬 雜人毋得入(지차개하마 잡인무득입)이라 새긴 하마비를 1614년에 세웠으며 1856년에 중각하였다. 하마비를 받치고 있는 사자의 조각이 아름답다.

 

 

일본 관광객들이 경기전을 찾았다. 

 

여기서 잠시 이른 새벽으로 돌아간다. 

 

굳게 닫혀있는 경기전 정전

비가 내리는 이른 새벽 경기전의 모습에 적막함이 깃든다.

 

 

담장

그 너머엔 무엇이 있을까?

경기전 정전

조선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모신 곳.

지금은 이른 새벽이라 들어갈 수 가 없다. 한가할 때 돌아다니니 사람들에 치이지 않아서 참 좋다.

 

경기전 주변의 느티나무에 단풍이 물들고 있다.

 

 

예종의 태실과 비

 

 

 

비가 내리네.

촉촉히 젖은 대지 위에 단풍이 낙엽되어 비에 젖어드네.

저기 빈의자.

누구를 위한 것인가?

저 빈 의자에 앉아 가을을 만끽하고 싶어도...

 비에 젖은 낙엽 쌓인 길을 걸어 본다. 멋스럽다.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였던 전주사고.

전주가 없었다면 조선의 역사도 송두리째 사라져버렸을거라고 한다.

조선왕조실록을 임진왜란 때 난리를 피해 잘 보관하여 오늘날 조선왕조실록을 볼 수 있었다고 하니 기록문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