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에 관심이 많은 남편을 따라 전국에 흩어져 있는 탑을 찾아다닌 지 몇년이 지났다.
국보급 탑부터 무너지고 훼손되어 볼품없이 된 탑까지 많이도 보았다.
화천지역 여행을 하면서 문화재를 꼼꼼히 살펴 출력까지 해 온 남편의 성화에 못이겨 오늘도 위라리칠층석탑을 찾는다.
빈 절터엔 탑만이 덩그러니 남아 이곳이 절터였음을 말해 준다.
탑의 상륜부엔 하얀 눈이 남아있다.
강원도유형문화제 30호 위라리칠층석탑
고려시대의 옛 절터에 남아 있는 7층 석탑이다. 기단부재, 탑몸돌, 지붕돌 등이 사방에 흩어져 있던 것을 수습하여 다시 세운 것으로, 지붕돌과 탑신의 1 ·2 ·3층의 몸돌은 원래의 것이고 4층 이상의 몸돌은 1975년 복원할 때 보충한 것이다.
탑의 형태는 커다란 바닥돌 위에 7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탑신의 몸돌은 각 모서리마다 기둥모양을 새겨놓았고, 2층에서 1층에 비해 큰 폭으로 높이가 줄어들다가 그 이후부터는 아주 조금씩 줄어들었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3단씩이며, 처마는 수평을 이루다 네 귀퉁이에서 살짝 치켜 올라갔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이 모두 없어지고 둥근 돌 하나만 남아 있다.
규모만 작을 뿐, 탑신의 몸돌에 기둥을 조각한 것이나 지붕돌받침이 3단인 점 등이 남계원칠층석탑(국보 제100호)과 매우 비슷한 양식과 수법을 보이고 있어 두 탑의 제작연대가 비슷한 시기일 것으로 보인다.
탑의 형태는 커다란 바닥돌 위에 7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탑신의 몸돌은 각 모서리마다 기둥모양을 새겨놓았고, 2층에서 1층에 비해 큰 폭으로 높이가 줄어들다가 그 이후부터는 아주 조금씩 줄어들었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3단씩이며, 처마는 수평을 이루다 네 귀퉁이에서 살짝 치켜 올라갔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이 모두 없어지고 둥근 돌 하나만 남아 있다.
규모만 작을 뿐, 탑신의 몸돌에 기둥을 조각한 것이나 지붕돌받침이 3단인 점 등이 남계원칠층석탑(국보 제100호)과 매우 비슷한 양식과 수법을 보이고 있어 두 탑의 제작연대가 비슷한 시기일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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