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의 위봉사
위봉사는
문화재를 찾아 전국을 헤매고 다니는 남편 때문에 2008년 5월에 다년간 적이 있어 낯설지가 않다.
위봉사의 창건에 대한 여러가지 설이 있는데
먼저 1799년 전국의 사찰에 대해 기록한 [범우고]에는 고려초에 최용갑이라는 인물이 처음 암자를 세운 뒤 나옹스님이 중창한 것이라 하였다.
속전에 의하면 산의 형세가 사방이 둘러싸여 있고, 처음 창건할 때 봉황새의 이적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또한 사찰 내에 있는 [극락전중건기]에 의하면 신라 말에 최용각이라는 사람이 산천을 섭렵하다가 3마리의 봉황이 날아든 흔적을 발견하고 이곳에 절을 지었다고 하며
또 다른 설은 신라 604년 서암스님에 의해 세워졌다는 기록이다.
여기에 나오는 나옹스님은 고려 후기 불교를 이끌어간 위대한 고승으로 추줄산위봉사사적사병서에는 나옹을 창건주라 기록하였다.
조선 1675년(숙종 1년)에 전주부윤 권대재가 사찰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위봉산성을 축조하고, 전주 경기전에 봉안되어 있는 이태조의 영정을 유사시에 이안하기 위하여 6칸 규모의 행궁과 다른 부속건물 등을 산성내에 설립하였다.
위봉사는 성곽 수호의 임무까지 띄게 되어 동학 농민혁명 당시 전주 경기전에 있던 태조의 영정을 이곳으로 피난시켜 수호하기도 하였다.
근세 초까지 이 지역을 대표하는 사찰로서 1911년 조선총독부가 모든 사찰을 30본말사로 구획할 때 위봉사는 전북 일원의 50여 사찰을 관할하는 본사의 위상을 갖출 정도의 대단한 사찰이었다. 이후 일제강점기와 6.25를 거치면서 퇴락하였다가 현재는 비구니 스님들이 수행하는 포교의 전당으로 도량을 일구어 가고 있다.
위봉사 경내에 들어서니 잘 생긴 소나무 한 그루 시선을 사로잡는다.
고요한 산사에 들어서니 마음 또한 고요해진다.
위봉사 들어가는 입구
계단이 꽤 여러 개 나타난다.
벌써 위봉사에 들러 나오는 이들이 보인다.
사천왕상이 금방이라도 죄 지은 이들을 호통할 것 같다.
이제 곧 대웅전이 나타나리라.
위봉사 경내
보물 제608호 완주 위봉사 보광명전
빛을 두루 비춘다는 뜻을 가진 보광명전의 법당 앞 배롱나무꽃이 붉게 피어있다.
보광명전에 대해 살펴보면
규모는 앞면 3칸·옆면 3칸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기둥 윗부분에 장식하여 짠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이다.
건물 안쪽은 천장 속을 가리고 있는 우물 정(井)자 모양의 우물천장으로 꾸몄다. 불단 위쪽으로 운룡(雲龍)과 여의주 모양의 구슬을 장식한 닫집을 만들어 놓아 불상에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안쪽 뒷벽에 그린 백의관음보살상을 비롯한 여러 불화와 비교적 채색이 잘 보존된 금단청은 차분하고 아늑한 법당 안의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우수한 옛 채색기법과 조선시대 목조 불전건축 연구에 소중한 자료가 되는 문화재로 평가 받고 있다.
경내의 이곳저곳을 둘러본다.
종각
소나무와 배롱나무꽃이 멋진 조화를 이룬다.
풍접초가 예쁘게 피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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