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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여행]화순옹주의 애절한 사랑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는 화순옹주 홍문

무지개_느티 2011. 9. 18. 06:00

용봉사 산행을 하기 전 생각보다 빨리 도착하여 들른 추사선생 유적지를 한가하게 둘러보고 추사고택, 화순옹주 홍문, 월성위 김한신과 화순옹주의 무덤, 추사기념관, 추사 김정희선생의 무덤 등을 차례로 둘러본다.

추사 김정희 선생의 고택은 전통가옥으로 한옥을 공부하기에도 좋고 정원이 잘 가꾸어져 언제 들러도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어서 좋다.

 

 

화순옹주홍문 (和順翁主紅門) , 충청남도 유형문화제 제 45호

 

  화순옹주의 정절을 기리는 열녀문이다. 추사 김정희의 증조할머니이자 조선 영조(재위1724∼1776)의 둘째딸인 화순옹주는 남편인 김한신이 3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자 그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음식을 입에 대지 않았다. 아버지 영조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슬픔을 이겨내지 못한 옹주는 결국 세상을 떠났다. 영조는 남편에 대한 옹주의 정절을 칭찬하면서도 자신의 뜻을 따르지 않은데 대한 아쉬움 때문에 열녀문을 내리지 않았다. 지금의 열녀문은 훗날 정조(재위 1776∼1800)가 내린 것이다.
  김정희유적지 안에 위치하고 있는데, 홍문 외에 옹주와 김한신의 합장묘·김정희 묘·김정희 고택이 있고 천연기념물 제106호로 지정된 백송이 있다.
묘막터는 원래 53칸의 큰 건물이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불에 타서 없어지고 주춧돌만 남아있다. 앞면 8칸·옆면 1칸 규모이며 근래에 담장을 설치하였다. 


 

 

 

 

월성위 김한신과 화순옹주의 무덤

 

조선 후기의 문신인 정효공 김한신(1720∼1758)의 묘소이다.
1732년 13세 때 영조의 둘째 딸 화순옹주와 결혼하여 월성위에 봉해졌으며, 오위도총부도총관과 제용감제조를 역임하였다. 글씨를 잘 쓰고, 시문에 능하였던 그는 애책문(哀冊文), 시책문(諡冊文) 등을 많이 썼으며, 도장을 새김에 있어서도 뛰어나 인보(印寶:임금의 도장)를 새기기도 하였다.

 

 월성위 김한신의 묘

 

 

 

 

 

 

상세문의:  충청남도 예산군 문화관광과 041-339-7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