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고택, 화순옹주 홍살문, 월성위 김한신의 묘를 둘러보고 추사기념관에 잠시 들른다.
추사선생에 관한 연보, 자료를 전시해 놓은 곳이다.
추사 기념관은
추사 김정희 선생의 드높은 서예정신과 위대한 업적을 새롭게 조명하고 후세에 남긴 작품들을 체계적으로 보존, 건시하여
추사선생의 다양한 면모와 그 위상을 재정립하기 위해 2008년에 건립되었다.
추사기념관 주요시설: 상설전시장, 기획전시실, 다목적 영상실, 다목적체험실, 추사기념품 판매장 등이 있다.
추사 김정희 선생묘
추사묘는 용산 왕자지(龍山 旺子池) 건좌(乾坐)인데, 지금의 신암면 용궁리이다. 1937년에 초배(初配)인 한산이씨 묘에 추사묘와 계배(繼配)인 예안이씨 묘를 이장하여 3위를 합장하였다. 묘에는 석상과 망주석 1싸이 있고 묘비는 그 해 9월에 세웠는데, 종인(宗人) 김승렬(金承烈)이 짓고 썼다.
추사 김정희 선생은 1786년 6월 3일 충남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에서 영조의 부마이신 월성위 김한신의 증손이며, 이조판서 김노경(金魯敬)의 아들로 태어나 백부 김노영에게 입양되었다.
선생은 조선왕조후기의 실학자이며 대표적인 서예가로, 벼슬은 병조참판과 성균관 대사성에 이르렀으며, 당시의 당쟁에 휩쓸려 제주도와 함경도 북청에서 10여넌간 유배생활을 재내다, 말면에 생부 노경(魯敬)의 묘소가 있는 경기도 과천에서 71세를 일기로 1856년 10월 10일 (철종 7년)에 작고하였다. 선생은 단순한 예술가에 그치지 않고, 시대사조의 구문화체계를 탈피하여 신지식의 기수로서, 새로운 학문과 사상을 받아 들여 신문화 전개를 가능하게 한 실학자인 동시에 선각자(先覺者)이기도 하다.
선생은 북학파의 거벽(巨擘)으로서, 청조의 고증학풍(考證學風)을 도입하여 학문으로는 경학(經學), 금석학(金石學), 문자학(文字學), 사학(史學), 지리학(地理學), 천문학(天文學)에 이르기까지 박통(博通)하였고 , 북한산 기슭의 비석이 신라 진흥왕의 순수비(巡狩碑)임을 고증하기도 하였다.
저서로는 완당집(阮堂集), 예당금석과안록(禮堂金石過眼綠), 실사구시설(實事求是說), 완당척독(阮堂尺牘), 담연재시고(覃 揅齋詩藁) 등이 있다. 이와 같이 넓고 깊은 학문과 천부의 재질을 바탕으로 한 추사의 예술은 시(詩) 서(書), 화(畵), 전각(篆刻) 등에도 뛰어났으며, 서도(書道)는 추사체라는 독자일문(獨者一門)을 열어 서예사상 지고의 경지를 이룩하였다. 작품으로는 「묵란도(墨蘭圖) 」, 「묵죽도(墨竹圖) 」와 구보로 지정된 「세한도(歲寒圖) 」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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