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여행]선비의 기상과 사림의 정신세계를 엿보는 소쇄원
남도여행에서 만난 소쇄원
남도여행에서 담양을 넣는다면 빼 놓을 수 없는 코스가 소쇄원일 것이다.
"소쇄원"은 전남 담양군 남면 지곡리 123 번지에 소재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원림이다.
1981년 국가 사적 304호로 지정되었으며 2008년 5월 명승 제40호로 지정된 한국민간 정원의 원형을 간직한 곳으로 자연에 대한 인간의 경외와 순응, 도가적 삶을 산 조선시대 선비들의 만남과 교류의 장으로서 경관의 아름아움이 가장 탁월하게 드러난 문화유산의 보배이다.
전체적인 면적은 1,400여평의 공간에 불과하지만 그 안에 조성된 건축물은 상징적 체계에서뿐만 아니라 자연과 인공의 조화를 절묘하게 이뤄내며, 그 안에 조선시대 선비들의 심상이 오롯이 묻어나 있는 공간이다.
현재 남아있는 건물은 대붕대와 광풍각 그리고 제월당이 있으며, 긴 담장이 동쪽에 걸쳐 있고, 북쪽의 산사면에서 흘러내린 물이 담장 밑을 통과하여 소쇄원의 중심을 관통한다.
"소쇄원"의 주요한 조경수목은 대나무와 매화, 동백, 오동, 배롱, 산사나무, 측백, 치자, 살구, 산수유, 황매화 등이 있으며, 초본류는 석창포와 창포, 맥문동, 꽃무릇, 국화 등이 있다. 조경물로는 너럭바위. 우물, 탑암과 두 개의 연못이 있으며, 계곡을 이용한 석축과 담장이 조화로운 곳이다.
이러한 공간의 조성은 조선 중종 때의 선비인 소쇄공 양산보의 주도로 이루어졌으며 그 정확한 조영시기는 1520년대 후반과 1530년대 중반으로추정되고 있다.
"소쇄원"은 크게 내원(內園)과 외원(外園)으로 구분하는데 우리가 흔히 말하는 소쇄원은 내원을 말한다. 소쇄(瀟灑)는 '맑고 깨끗하다'라는 뜻으로 당시 양산보의 마음을 잘 표현하고 있다.
제월당
양산보는 송(宋)의 명필 황정견(黃庭堅)이 주무숙(周茂叔)의 사람됨을 <광풍제월(光風霽月>에 비유한 것에 유래하여 대표적 건물을 각각 제월당(霽月堂)과 광풍각(光風閣)으로 이름지었다.
소쇄원을 만든 사람은 양산보라는 사람으로 1503년에 태어나 1557년 생을 마감한 이다.
15살에 정암 조광조의 문하에서 수학하는데 스승이 바른 정치를 구현하다 기묘사화(1519년)에 연루되어 화순 능주에서 귀양을 살다 사약을 받고 죽게되자 17살에 고향으로 돌아와 평생 세상에 나가지 않고 은둔, 처사의 길을 걸었던 사람이다.
이는 선비가 불행하게도 때를 만나지 못하면 도를 마음에 담아둘 뿐 펼치지 못하며 교화는 자신의 집안으로만 그치고 넓혀지지 못한다는 옛적의 말을 볼 때 그로 인해 양산보는 선비의 큰 뜻을 펴지 못하였으나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 않고 학문에 힘쓰며, 지역의 선비와 교류하고 나무와 화초를 가꾸고 원림을 조성하며 바른 삶을 살아간 선비의 본보기가 되었던 사람이었음을 알수 있다.
소쇄공의 행적을 기록한 글을 보면 “본래 덕성이 높은데다 또한 조용한 곳에서 오랫동안 학식을 함양했으니 알차고 참된 인격자로서 호남에서 위대한 선비로 존경받는 인물이 된 것이다.
안에서는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여 언제든지 부모 곁에 있으면서 환한 얼굴로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조석으로 인사드리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일찍이 말하기를「사람에 있어서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없다」하였으며 「사람의 자식된 자로서 부모에게 효도를 못하는 자를 어찌 사람이라 할 수 있겠느냐」라고 할 정도였다.
특히 그는 수백마디로 된 효부(孝賦)를 지어 효에 대한 근본정신과 사상을 밝혔다.
더욱이 한문에 밝지 않은 일반인들의 이해를 위해 한글을 새기어 적는등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기 때문에 퍽 감동적인 책이라 아니할수 없다.” 라고 후학인 이민서는 소쇄공을 얘기하고 있다.
소쇄원 들어가는 입구
청둥오리인지 오리 세 마라가 소쇄원 들어가는 입구의 하천에서 먹이를 찾고 있는지 물 속을 들여다 보고 있다.
소쇄원 들어가는 입구 양 옆에는 대나무 숲이 조성되어 있다. 산책하기에도 좋고 멋도 있으며 머리가 맑아져서 더욱 좋다.
옛 선비들은 곧은 대나무를 보며 대쪽같은 기상을 마음에 새겼으리라.
하늘 향해 쭉쭉 뻗은 대나무를 보며 대나무의 기상을 닮고 싶다.
광풍각
소쇄원 입구에 위치한 초정(草亭)과 대봉대(待鳳臺)는 양산보가 꿈꾸는 염원이 담겨 있으며, 애양단(愛陽壇) 담장에는 하서 김인후의 소쇄원사십팔영이 걸려 있었다고 한다.
눈 내린 광풍각에 잔설이 깔리고 앙상한 나뭇가지는 혹독한 겨울을 인내하며 따뜻한 봄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배롱나무 화려하게 피는 계절엔 소쇄원이 화사해질 것 같다. 정말 아름다운 풍경을 자아내겠지.
광풍각
잔설이 깔린 광풍각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대봉대
이곳에서 봉활을 기다리며 소쇄처사가 꿈꾸었던 세상은 어떤 세상이었을지 잠시 생각해 본다.
오곡문
담장을 보니 흙과 돌로 쌓은 담방으로 고풍스럽다.
담장에는 오곡문과 애양단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소쇄원에는 몇 개소에 담장이 둘러져 있는데 이들은 외원과내원을 구분지어주는 경계이다.
입구에서 북동쪽을 향하여 애양단까지 약 33m, 애양단에서 북서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오곡문을 지나 매대까지 약 20m, 이곡으로부터 남서방향으로 제월당까지 약 20m가 되는 ㄷ자형의 담장이 축조되어 있다. 흙과 돌로 쌓여진 담장의높이는 2m이고 그 위에 기와가 덮여 낮아 방어를 위한 폐쇄적 기능을 하는 것이 아니라 골바람을 막아주고 경역의 한계를 지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다.
매대 뒤쪽에 있는 담장에는 송시열이 썼다는 ‘瀟灑處士 公之廬’라는 글이 있다. ‘려(廬)’가 의미하는 오두막이 따로 있는 지는 분명치 않다. 일반적으로 ‘려’라 함은 자기집을 낮추어 부르는 말로 겸손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또한 담장의 바로 뒷부분에 조그마한 단이 있는데,이 단은 처사공의 제단이라고 전한다. 입구에서부터 애양단까지의 직선 담장에는 김인후의 48영이 새겨진 목판이 박혀 있었으나 담장이 유실되면서 없어졌다.「소쇄원48영」의 제48영을 보면 ‘백척의 긴 담장이 가로질러 마치 병풍을 두른 듯하였으며 그 곳에는 새로운 시들을 써 붙였다’고 하였으며 비바람에도 든든하다 하였으니 길이가 백척이고 비바람에도 쉽게 파괴되지 않았음을 암시해 준다 할 것이다.
일설에 의하면 소쇄원이 지네형국이기 때문에 담장을 쌓아 지네의 강한 기氣를 눌렀다는 얘기도있다. 한편 지네와 대응하여 소쇄원 반대편 마을 이름을 ‘닭뫼’라 부른다.
위에서 다룬 건축요소를 이외에도 관덕사, 죽림재, 사립문 등이 여러 시가의 내용에서 나타나고 있다.
애양단愛陽壇
애양단은 겨울철 북풍을 막기 위하여 세운 단으로 손님을 맞는다는 대봉대 바로 뒤편에 위치한다. 애양단에 관한 내용은 양천운의 「소쇄원계당중수상량문」에 잘 나타나는데, 대봉대, 관덕사, 한벽산(寒碧山) 등이 기록되어 있다.
길이 약 10m, 넓이 약 7m의 마당을 높이 약 2m의 담장이 ㄱ자로 돌려져 남서향 하고 있으며, 추운 겨울철이라도 볕이 따사롭다.
「소쇄원도」에는 이곳에 난대식물인 동백나무가 심어져 있다. 또한 『소쇄원사실』에서 소쇄공의 행적과 관련된 내용을 읽다보면 그에게서 스며나는 관념으로 중요한 것이 바로 ‘효’였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데, 그의 관념적 동기였던 효는 겨울철 북풍을 막아주고 언제나 따뜻한 볕을 준다는 의미부여의 과정을 통하여 애양단에서 구체화된 것을 읽을 수 있다.
효에 대한 의미는 부훤당의 의미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또한 애양단은 공간의 이중적 함축을 지니고 있다. 즉 황량함을 담장으로 막아 공간감(영역성)을 주고 햇살이 담에 비쳐 따뜻한 질감을 주는 듯하다.
오곡문五曲門
오곡문은 담밑의 구멍으로 흐르는 계곡물 ‘원규투류垣竅透流’바로 옆쪽에 있던 협문夾門 형식으로서 담밖의 영역(외원)과 담안의 영역(내원)을 이어주는 문이다.
현재의 문이 있었던 옛자리에 구멍만 뚫려 있는 정도이며, 이를 대신하여 담장에 글씨로 쓰여있다. 「소쇄원도」에는 약작을 건너 매대에 이르는 첫 단의 끝, 즉 담밑으로 흐르는 물길을 통과시키고 있는 담장의 주변에 오곡문이 있는 것으로 나타나 있으나 「소쇄원48영」에는 제15영에 ‘오곡류’라는 구절만 있다. 그렇다면 왜 이곳을 48영에는 오곡류라 하였고「소쇄원도」에는 오곡문이라 했을까? 소쇄원의 내원과 외원을 통틀어 파악하고자 한다면 무이구곡적 표현에서 오곡문 부분은 오곡에 해당되기에 충분한 가능성을 지닌다.
즉 오곡문 밖에 6곡에서 9곡까지의 영역이 있다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만약 이 추정이 옳다면 소쇄원은 외원으로 그 범역이 넓혀져야 할 것은 물론이고 오곡문의 전체와 48영의 내용도 해석을 달리해야 할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오곡의 대표적 봉우리가 은병이라고 한다면 오곡류가 흐르는 담장은 바로 그 은병과 무이의 계류를 나타내고자 했던 의미로써 수용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추정이 가능하다.
오랜 세월 비바람에도 끄덕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오곡문의 모습이 신기하기만 하다.
매대(梅臺)에는 2단의 단을 두고 매화를 심었으며, 문패격인 '소쇄처사양공지려(瀟灑處士梁公之廬)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소쇄원 바깥길
오곡문
큰 물을 만나면 무너져 버릴 것만 같은데 한번도 무너진 적 없이 물이 흔한 계절에 오곡문 밑으로 맑은 물이 흐르는 장관을 연출하고 있다.
제월당
제월당에서 내려다 본 모습
저 문을 통과하다가 많은 이들을 머리를 부딪쳐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을 보았다.
머리 조심이라는 문구를 보고도 고개를 들고 가다가 그만 여기저기서 "쿵~~~"소리가 난다.
오랫만에 고드름이 크게 매달린 모습을 보았다.
제월당
'비개인 하늘의 상쾌한 달'이라는 뜻의 제월당은 주인이 거쳐하면서 학문에 몰두하는 공간이며, '비갠 뒤 해가 뜨며 부는 청량한 바람'이라는 뜻의 광풍각은 손님을 위한 사랑방 역할을 하였다.
쌀쌀한 날 문화해설을 하시는 해설사분께서 마루에 앉아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따뜻한 방에서 손님을 맞이하였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제월당에 걸린 <소쇄원사십팔영> 현판이 보인다.
제월당 우측에서 바라본 모습, 내부에는 소쇄원사삽팔영과 소쇄원을 주제로 한 한시가 걸려 있다. 제월당 현판은 우암 송시열선생이 썼다.
눈이 깔려있어 조심조심 걷는다.
제월당을 바라보는 이들이 많이 있다.
제월당에서 광풍각으로 가기 위해서는 저기 작은 문을 통과해야 한다.
문 입구에는 머리조심이라고 써 있으나 웃을 수 밖에 없는 일들이 자주 벌어진다.
딸래미도 '쿵' 하고 머리를 박았고, 광풍각을 둘러보는데 '쿵'소리가 들리며 옆에 있던 친구들의 웃음소리가 한참 동안 이어진다.
친구는 머리가 아프다고 날리인데 친구들은 재미있다고 웃으니
옆에 있다가 절로 웃음이 나온다.
담장도 돌계단도 모두다 아름답다.
자연과의 어울림이 있어서 더욱 아름다운 소쇄원
고드름이 기둥을 이룬다.
광풍각에서 사진 찍고 있는 소녀들이 그 박치기의 주인공들이다.
아픈 것도 잠시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재미있게 즐기고 있다.
광풍각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전각 아래에는 계곡물이 졸졸 흐르고 겨울의 싸늘한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만든다.
작은 연못은 얼음이 얼어 겨울 동안 잠시 휴식을 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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