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여유을 찾아/전라도여행

[익산여행] 두동교회에 남아 있던 남녀 유별의 풍속을 만나다.

무지개_느티 2010. 4. 26. 23:57

전라북도 익산시 성당면 두동리에 있는 두동교회

‘왜 사람들은 이 건물에 관심을 갖는 걸까?'

‘이번 투어에 기자단을 왜 이리로 안내하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해설사님께서 이동하는 차 안에서 두동교회에 대해 잠깐 설명을 하였지만, 직접 눈으로 확인해야 의문이 풀릴 것 같다.

그런 의구심은 차에서 내려 두동교회의 초기 본당 건물을 보는 순간 말끔히 사라져 버렸다.

 

두동교회를 둘러 보자.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잘 자란 반송이다.

지붕 위로 멋지게 뻗은 반송이 눈을 사로잡는다.

 

집이 ㄱ자형이네.

왜 그럴까?

 

이 두동교회의 특징은 ㄱ자형의 건물이라는 것이다.

안내문을 읽어 보니 이해가 간다.

잠시 설명을 보자.

남녀의 예배석을 직각으로 배치하여 서로 볼 수 없도록 하였으며, 두 축이 만나는 중심에 강단을 시설하여 ㄱ자가 90도 회전한 평면형태를 이루고 있다. 북서쪽 모서리의 강단은 한 칸 규모이며 남녀 회중석은 각각 3칸 크기로서 같은 규모이다. 내부는 통칸으로 이루어졌는데 전면에서 볼 때 ㄱ자형 평면 중 남북축을 이루고 있는 곳이 남자석이고 동서축은 여자석이다. 각각의 박공면에 출입문이 있어 남녀 유별의 유교적 유풍에 따라 동선을 분리하였다.

지금은 남녀 유별의 풍속은 사라졌고 남녀 평등 사회로 그리 오래되지 않은 세월인데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ㄱ자형 교회는 토착적인 자율성을 강조하는 네비우스 선교정책에 따라 전통과 개신교가 결합되면서 나타났던 하나의 과정적 평면으로 한국 교회건축만의 독특한 유형이다. 이러한 형태는 도내에 금산교회와 두동교회만이 있다.

 

  1920년대에는 남녀유별의 유교적 유풍에 따라 내부를 구분하던 기존의 휘장들이 제거되는 일반적 경향에도 불구하고 두동교회는 1929년에 ㄱ자형 교회를 건립하고 있어 주목된다.

이제 이해가 간다. 

 

 

내부바닥은 장마루가 깔려 있으며 강단은 회중석과 380㎜의 단차를 두고 전면 모서리를 사선으로 처리하고 그 중앙에 강대상을 놓았다. 강대상 전면에는 내진 기둥 하나가 세워져 있는데 다른 기둥은 모두 방주(方株)를 사용한 반면 이 기둥만은 8각주를 사용하여 차별을 두었다. 
 

나무 마루바닥, 나무 의자, 천장 위 램프도 정겹다.

 

 

 이곳은 일제의 검열을 피하기 위한 공간이었다고 한다. 일제시대에 이 교회에서 선교도 하고 민족의식도 고취하고 문맹퇴치를 위한 계몽운동도 하였다니 일제의 시선으로 볼 때 달갑지 않았을 것은 뻔한 일이다.

 

 한 켠에 낡은 풍금이 있다. 어릴 적엔 학교에서도 이 풍금으로 음악 수업을 듣곤 했었다.

 

 

내 어릴 적 시골에선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석유기름을 넣은 램프를 사용했었는데 그을음이 많이 났었다. 이 램프를 보니 옛 생각이 난다.

 

 멀리서 ‘ 댕그렁댕그렁' 종소리가 울려퍼지는 듯하다.

 

 정겨운 모습니다. 1920~1930년대의 모습을 영화 속에서 보는 듯하다. 시간이 잠시 멈추어 버린 듯…….

 

 

두동교회는 1923년 해리슨 선교사의 전도로 박재신이 그의 부속사를 빌려주어 처음 설립되었으나 1929년 박재신이 교회에 부정적으로 돌아서게 되자 남은 교인들이 중심이 되어 인근의 땅을 마련하여 지금의 ㄱ자형 교회를 새로 지었다고 전한다. 

개나리꽃 사이로 보이는 교회의 모습이 아름답다.
 

 

 교회 앞에 수선화가 수줍게 피어 있다.

 

 

 

우리나라 초기 개신교 교회건축의 가장 독특한 형태라 할 수 있는 ㄱ자형 교회는 유교적인 영향으로 남녀 구분된 집회 공간을 마련하기 위한 방편에서 비롯되었다. 이 건물은 1920년대 초기 교회건축의 평면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당시 사회의 상황과 건축적 특헝을 잘 나타내고 있는 사례로서 국내에서는 보기드문 초기 개신교 교회건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