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의 국어시간
문병란
내가 아홉 살이었을 때
20리를 걸어서 다니던 소학교
나는 국어 시간에
우리말 아닌 일본말,
우리 조상이 아닌 천황을 배웠다.
신사참배를 가던 날
신작로 위에 무슨 바람이 불었던가
일본말을 배워야 출세한다고
일본놈에게 붙어야 잘 산다고
누가 내 귀에 속삭였던가.
조상도 조국도 몰랐던 우리,
말도 글도 성까지도 죄다 빼앗겼던 우리,
히노마루 앞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일본말 앞에서
조센징의 새끼는 항상 기타나이가 되었다.
어쩌다 조선말을 쓴 날
호되게 빰을 맞은
나는 더러운 조센징,
빰을 때린 하야시 센세이는
왜 나더러 일본놈이 되라고 했을까.
다시 찾은 국어 시간,
그날의 억울한 눈물은 마르지 않았는데
다시 나는 영어를 배웠다.
누가 내 귀에 속삭였던가.
스물다섯 살이었을 때
나는 국어 선생이 되었다.
세계에서 제일 간다는 한글,
배우기 쉽고 쓰기 쉽다는 좋은 글,
나는 배고픈 언문 선생이 되었다.
지금은 하야시 센세이도 없고
뺨 맞은 조센징 새끼의 눈물도 없는데
윤동주를 외우며 이육사를 외우며
'마음을 다스리는 글 > 좋은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풀-김수영 (0) | 2009.10.19 |
---|---|
흔들리는 것은-나희덕 (0) | 2009.10.14 |
결혼 기념일 (0) | 2009.09.26 |
엄마의 런닝구-배한권 (0) | 2009.09.03 |
감자밭-정화영 (0) | 2009.08.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