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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지간의 정을 나누는 백봉초등학교 27회의 세상사는 따듯한 이야기

무지개_느티 2011. 11. 27. 21:40

사제지간의 정을 나누는 백봉초등학교 27회의 세상사는 따듯한 이야기

 

2011년 11월 26일 저녁 7시

 

청주 용암동의 한 오리집에서 충북 괴산군 청안면 부흥리에 위치한 백봉초등학교를 졸업한 27회 송년모임이 있었다.

 

천안에서 지인의 결혼식이 있어 내려갔다가 청주에 계시는 부모님을 뵈러 갔었다.

내려간김에 남편의 친구 아버지가 암 선고를 받고 투병 중이시라 병문안도 할겸 겸사겸사 청주에 가게 된 것이다.

천안 아우내 장터에서 어머니께서 즐기시는 순대를 사가지고 친정집에 들르니

오늘 저녁 제자들이 송년모임에 어머니와 함께 초대를 받아 모임장소로 가셔야한다고 벌써 외출복을 갈아입고 계셨다.

5시 30분부터 자꾸 시계를 보신다.

아버지께선 6시에 제자들이 모시러 오기로 하였다면서 자꾸 시계를 보신다.

 

백봉초등학교는 아버지께서 젊은 시절 10년 동안이나 근무하셨던 학교인데다 온 정성을 다해 제자들을 아낌없이 사랑하셨던 학교이기도 하다.

예전엔 중학교도 시험을 쳐서 진학을 할 때라 초등학교 6학년도 입시지옥을 겪어야만 했던 시절이 있었다.

어린 시절에 우리집은 방이 2칸밖에 안 되는 작은 집에 세를 살고있었다.

아버지께선 공부 안 하는 제자를 집에 데려다 공부를 시키고 중학교 진학할 때까지 한동안 우리집에서 공부를 시키기도 하셨다.

어떤 날은 6학년 담임반인 여학생이 찾아와 늦도록 돌아가지 않으면 어머니께서 재워 보내시곤 하셨다.

 

지금 아버지께선 퇴임을 하시고 어머니와 함께 서실에 다니시며 서예작가가 되셨다.

친정집 2층엔 원룸으로 조립식 집을 지어 탁구대를 놓고 탁구도 치고 가까운 동사무소에 나가 포겟볼도 하신다고 하셨다.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에 정열을 다 바쳤던 제자들은 이제 어엿한 중년이 되어 아버지의 젊은 시절을 이야기 한다.

 

6시가 넘어 15분이 지나자 전화 한 통이 걸려온다.

같이 근무하셨던 선생님께서 제자들이 산악회가 있어 등산을 갔다가 다소 늦어져 회식 장소까지 모시러 오기가 힘들다는 얘기였다.

오늘 있을 회식장소가 있는 동네에 막내동생이 살아 전화를 하여 회식장소를 검색해 보게 했다.

남동생은 인터넷으로 검색을 하여 회식장소를 바로 알려준다. 

남편은 찾을 수 있다고 한다. 네비게이션 없이 전국을 누비는지라  길 찾는데는 도사다.

 

아버지를 회식 장소로 모셔다 드리고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회식장소에서 두 분 선생님이 오시기를 기다린다.

어린 시절 추억 속의 선생님들은 어떤 모습으로 변해계실까?

한참이 지나서야 두 분 선생님께서 오신다. 주름살과 흰 머리가 세월을 말해준다.

그래도 금방 알 수 있겠다. 인사를 드리고 난 회식장소를 나왔다.

 

한 두어시간이 지나서 다시 찾은 회식장소에서는 많은 제자들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회식장소를 가득 메웠다.

훈훈한 이야기가 오가고 끼 많은 제자는 선생님 앞에서 재롱을 부린다.

세월이 많이 갔음에도 변함없이 제자는 제자인가 보다.

흐뭇한 미소를 지으시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지난 세월 함께한 제자들과의 추억이 담뿍 담겨있다.

고생하셨던 지난 날의 그 모든 것들이 한 순간 보상이 된 듯 기뻐하신다.

아직도 제자들 이름을 줄줄 외고 계시는 아버지를 뵈면서 제자 사랑하는 마음을 배운다.

 

한창 송년의 밤이 무르익는데 27회 제자 중에 암투병 생활을 한다는 제자 소식을 듣고 모금을 하는

훈훈한 정을 간직한 아름다운 선행을 하고 있는 제자들을 격려하며 아버지께서도 모금에 동참하신다.

제자들이 따라 드리는 술을 행복한 마음으로 많이 드신 것 같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연신 제자들 자랑을 하신다.

제자들을 만나면 해 주실 인사말도 원고를 써서 준비를 하셨다고 하신다.

매사 철저하신 아버지의 모습을 뵈며 또 한 수 배우게 된다.

 

오늘 백봉초등학교 27회 송년의 밤은

아버지에게 젊은 시절의 아름다운 추억을 떠올릴 수 있게한 아름답고 소중한 밤이었으며

제자들의 따뜻한 마음 또한 빛난 요즘 보기 드문 아름다운 송년의 밤이었다.

 

아버지께서는 집에 오셔서도 제자들 이야기를 그칠 줄 모르셨다.

난 밤 11시 반에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다 인천 집으로 향한다.

오늘 하루 바쁘고 피곤한 하루였지만 마음만은 정말 푸근하고 따듯한 하루였다.

 

아버지께 아름다운 밤을 선사해 주신 소중한 백봉초등학교 27회 선배님들께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